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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정약용 둘째아들 '흑산도 기행기' 18일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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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도 풍경,특산물, 풍속, 고래이야기 등 52일간의 일정기록

정학유의 부해기가 실린 유고(사진=한양대 정민 교수 제공)

정학유의 부해기가 실린 유고(사진=한양대 정민 교수 제공)
다산(茶山)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遊; 1786~1855)의 신안 흑산도 기행기가 18일 공개된다.

3일 신안군(군수 박우량)은 다산 집안의 책인 ‘유고(遺稿)’ 10책 가운데 8~10책에 수록된 정학유의 문집 ‘운포유고’(耘圃遺稿)에서 ‘부해기(浮海記)’를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를 통해 추진된 학술용역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1808년 다산은 둘째아들 정학유를 둘째 형인 손암(巽庵) 정약전의 유배지 흑산도로 아들 학유를 보냈다.

1807년 손암의 아들 정학초가 정학유와 함께 다산의 유배지인 강진으로 향하던 중 17세나이에 병을 얻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해기’는 정학유가 부친의 당부로 둘째 큰아버지 정약전을 만나기 위해 1809년 2월 3일부터 3월 24일까지 52일간 흑산도를 다녀온 여정을 기록한 여행기다.

정학유는 형 학연(學淵)과 함께 다산의 학문 활동을 도와 농가 풍속을 읊은 ‘농가월령가’ 지은이로 알려졌지만 학계에서 주목하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정학유는 부해기에 흑산도의 풍경, 특산물, 풍속과 주민 생활, 중국 표류선, 문순득 이야기, 산개(山犬 )이야기, 인어 이야기 등을 세세하고 다채롭게 적었다.

정학규가 기록한 고래 이야기는 '고래 다섯 마리가 나와 노닐며 멀리서 거슬러 왔다. 그중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물을 뿜는데, 그 형세가 마치 흰 무지개 같고, 높이는 백 길 남짓이었다. 처음 입에서 물을 뿜자 물기둥이 하늘 끝까지 떠받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도리어 옥 같은 눈이 땅 위로 떨어졌다. 햇빛에 반사되어 비치자 광채가 현란하였으니,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부해기’ 1809년 2월 12일)'라는 내용이다.

흑산도가 멀리 바라다보이는 교맥섬(우이도와 흑산도 사이의 무인도, 현 매물도) 인근에서 고래를 목격하고 기록한 것으로 정학유의 수려한 글솜씨를 엿보게 한다.

이 밖에도 손암과 다산의 인간적 면모를 볼 수 있는 자료도 이번에 새로 공개된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다산과 정약전은 서로의 유배지인 강진과 흑산도에 대해 ‘여기가 더 좋은 곳’이라며 일종의 토론을 벌였다. 그 편지를 이번에 확인해 시간 순서로 엮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약용이 형에게 보낸 편지는 '여유당집'에 실려있었지만 형 정약전의 답장을 문답식으로 구성한 적은 없었다.

이들 사이에 오간 편지에 따르면 다산은 "강진의 겨울 해가 한양에 비해 길고 여름 해는 짧다"며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했고 손암은 이에 응수해 "흑산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강진을 살기 좋은 고장이라 생각한다"며 "흑산도의 여름날엔 삼베옷 입을 일이 드물고 겨울날엔 서리가 내리는 것을 보기 힘들다. 강진이 이처럼 좋은가?"라고 묻는다.

신안군의 지원을 통해 번역된 부해기를 비롯한 서간문 등의 자료는 조선 후기 흑산도의 역사에 대한 연구와 정약전의 유배공간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우량 군수는 "앞으로도 군은 흑산도 사람들의 벗이었던 손암 정약전선생에 대한 다양한 학술연구 지원과 그의 애민정신을 기리는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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